도산의 주도로 시작된 좌우합작 운동은 한동안 활발히 추진되다가 실패로 끝나, 1920년대 말 중국에서의 한국독립 운동계는 결국 민족주의자들의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사회주의자들의 한국 독립운동자동맹(韓國獨立運動者同盟)으로 나뉘어지고 말았다. 한국독립당은 상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우리 나라 민족주의 정당이었는데, 도산계(서북파, 흥사단계)와 이동령계(기호파, 임정계)를 주축으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28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도산은 강령 기초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대공주의(大公主義)에 입각한 한국독립당의 강령을 주도했다. 후일 그가 국내로 압송된 후 한국독립당에 모였던 인물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었지만, 임정을 비롯한 모든 민족주의 단체들은 도산의 뜻이 반영된 강령만은 대부분 그대로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