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만화는 제한된 소재로 제작되어 내용이나 의상&배경 등이 고증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는 미국에서 인삼 장수들과 함께 조직한 '한인 친목회'를 토대로 여러 지역에서 한인들을 조직하여 '샌프란시스코 한인 친목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단체는 후에 대한인국민회의 시초가 되어 전 미주를 포함한 세계 해외 조직 중 가장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인삼 장수를 중심으로 한인들을 모아 친목을 형성했으며, 하와이에서의 불만이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져 일본인 노동캠프에 대한 불만이 생겨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이주한 한인 노동자들은 힘들게 노동캠프를 찾아가 일을 얻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한국인들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도산은 샌프란시스코 한인 친목회를 통해 미국 내 한인들을 도움으로 조직화하고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귤 따기에서는 정성스럽게 귤을 따는 것으로 일본인 노동자들을 능가하자는 마음가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도산이 미국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인해 국가적인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도산은 국내에서 국민을 이끌어 국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자는 의지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도산은 양기탁과 함께 비밀결사인 '대한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강압에 항거하고자 하는 의지와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비밀결사를 통해 미국에서 조직된 활동을 국내로 확장시켰습니다.
1907년에 국내로 귀국한 도산은 비밀결사를 통해 신민회를 조직하고, 신민회는 1911년에 발각되지만 이전까지의 활동으로 인해 국내에서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교육운동은 대성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 학교에서는 애국가가 탄생했습니다. 대성학교는 모범학교로서 윤치호가 교장으로 선임되고, 도산은 대리 교장으로서 학교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도산의 리더십 하에 신민회는 국내에서 각계각층의 독립운동가들을 통합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출처 : 투닝gpt, [제1회 도산안창호포럼] 도산 안창호의 리더십 형성과 민족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