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만화는 제한된 소재로 제작되어 의복이나 배경 등이 고증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도산 선생님은 1878년 11월 9일 대동강 하류의 도봉섬에서 태어났어요. 처음에는 도룡섬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춘원 선생은 도봉섬이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정에서는 계속해서 도봉섬이라는 대신 도룡섬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해서는 두분이 모두 채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1912년에 등기를 할 때 '봉상리'로 등재되었는데, '봉'자는 살려서 쓰려 했지만 '도봉'이라는 표기는 평안도에서 '섬의 산'을 의미하는 모양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산 선생님은 나중에 호를 '도산'으로 정한 것은 고향인 섬 산의 의미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도산 선생님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농촌 지식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집안은 가난했지만 농촌 지식인의 생활을 했어요.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족은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16살 때에는 동네에서 이루어진 전투를 목격하면서 민족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서당 동창 필대은 선생과의 토론을 통해 더욱 민족 의식이 강해졌습니다.
1894년에 서울로 올라와 민족 의식을 실천하려 했으나 돈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선교사의 제안으로 미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육학을 중심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교육을 통해 조국을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이후 돌아와서 지방에서 교육활동을 시작했고, 나중에 미주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 해외 조직을 조직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출처- 투닝gpt, [제1회 도산안창호포럼] 도산 안창호의 리더십 형성과 민족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