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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해당 만화는 제한된 소재로 제작되어 내용이나 의상&배경 등이 고증과 다를 수 있습니다.
1388년(우왕 14년) 2월, 원나라가 멸망하고 그 자리에 세워진 명나라는 고려에 하나의 서신을 보냈습니다. 고려가 소유하고있는 철령 이북의 땅은 본래 원나라의 소유였다가 고려가 빼앗았던 땅이니 원을 계승한 명나라 자신들의 땅이어야 마땅하다는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명나라는 철령에 철령위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로 고려의 조정은 시끄러워졌습니다. 특히 이성계와 최영의 의견 충돌이 컸습니다. 최영은 아직 세워진지 얼마 안된 명나라는 아직 내부가 혼란스러울터이니 이 기회에 요동을 공격해서 명나라의 야심을 꺾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4가지 이유를 들어 최영의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1.
소(小)로서 대(大)를 거역하는 것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
2.
농번기인 여름철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
3.
온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북쪽으로 원정하러 간 사이 왜구가 그 틈을 노릴 소지가 있는 것.
4.
곧 여름철이라 비가 자주 내리므로 아교가 녹아 활이 녹고 군사들은 질병을 앓게 될 것.
이른바 ‘4불가론’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에 신진 사대부들 또한 이성계와 뜻을 함께하여 요동 공격에 반발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왕은 최영의 편을 들어 요동 정벌이 강행되었고 이성계 또한 전장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5월에 고려군은 압록강 어귀의 작은 섬 위화도까지 진군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우려대로 장마가 시작되었고 불어난 압록강 탓에 위화도에서 14일을 체류해야했습니다. 이성계는 계속되는 장맛비에 회군을 요청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이성계는 함께 출진한 신덕계, 이지란과 의형제를 맺고 회군을 결정하였습니다. 회군한 이성계와 조민수는 최영과의 두 차례의 혈전 끝에 개경을 점령했고, 이내 최영과 우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왕위에 앉히고 고려의 권력을 잡게되었습니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의 신흥 무인세력과 신진 사대부가 결합하여 고려 권문 세족과 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자, 조선 왕조가 개창의 단초를 이룬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출처 - 투닝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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