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만화는 제한된 소재로 제작되어 내용이나 의상&배경 등이 고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종 시대의 조선은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달력을 받아와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과 위도 경도가 달라 많은 예측이 빗나갔으며 매 년 101부 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국의 관리들에게 배포하려면 손으로 달력을 베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방 관리들은 새해가 한참 지나서야 새 달력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농업 생산량 저하, 나아가 조선 경제의 파탄이라는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세종 대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두 가지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는 역법을 교정하고, 24절기의 밤낮 길이를 측정하였습니다. 시간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오늘날 잘 아는 해시계, 물시계와 같은 기구들이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1432년, 역법을 계산하는 문제가 해결되었고, 1444년, 그 내용을 학자 이순지를 필두로 하여 역법서 칠정산 내편과 외편으로 편찬시켰습니다.
칠정산의 오차는 1년에 -1초입니다. 이는 칠정산보다 140년 뒤에 나와 현재까지 쓰이는 국제 표준인 그레고리력의 오차가 1년에 +26초인 데에 반해 매우 정확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기록인 <세종실록>에는 왕이 “역법을 교정한 이후로는 일식·월식과 절기의 일정함이 중국에서 반포한 일력(曆書)과 비교할 때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매, 내 매우 기뻐하였노라.” 하며 감탄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사업의 결과로 24절기와 날수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와 더불어 농법을 정리한 실용 농학서 <농사직설>이 보급되며 농업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농업 경제의 부흥은 민생 안정으로 돌아왔고 농사 가능한 토지 면적과 생산량은 고려말 70만 결, 결당 300*두에서 세종 시대에 170만 결, 결당 1200두로 늘어났습니다.
Tip. 오늘날 칠정산보다 정확도가 떨어짐에도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레고리력이 날수가 규칙적이고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독자 달력을 사용중인 에티오피아와 이란은 날짜 계산 자체가 틀어져서 자국 달력과 그레고리력 달력을 모두 달아두고 사용한다고 합니다.
*역법: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관측한 뒤 계산에 따라 시간 단위를 지정하고 이를 편찬하는 것
*두: 1두(말)는 약 18리터와 같다.
출처 - 투닝 GPT,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7, 11, 12, 13, 14, 24년, 중앙SUNDAY 심층기획/인문학자의 과학 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