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만화는 제한된 소재로 제작되어 내용이나 의상&배경 등이 고증과 다를 수 있습니다.
1879년 1월, 고흐는 벨기에에 있는 가난한 광산촌에서 선교사직을 맡았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기독교에 몰두하던 고흐는 점점 더 경건하고 청렴한 마치 수도승같은 삶을 추구했습니다. 심지어 고흐는 자신의 하숙집을 노숙자에게 내어주고 정작 자신은 작은 오두막에서 짚을 깔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 고흐의 모습을 보고 선교단체는 고흐가 성직자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며 고흐를 해고해버렸습니다. 고흐는 항의하며 계속 선교사 일을 하려고 했지만 고흐의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 고흐의 곁에서 동생인 테오는 고흐가 다시 그림을 그리도록 설득했습니다. 테오에게 설득된 고흐는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해부학, 소묘, 원근법 등의 미술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고흐는 이웃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등의 사소한 의뢰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흐의 집을 방문한 이모부의 딸 코넬리아에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고흐는 코넬리아가 사는 암스테르담까지 쫓아가며 코넬리아에게 구애했지만 고흐의 도를 넘은 집착과 경제력을 이유로 매몰차게 거절당했습니다. 고흐는 헤이그로 돌아가 마우베라는 화가와 화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마우베와 점점 사이가 안좋아지고 고흐가 임질 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이에 차갑게 관계를 끊어버리고 잠적해버립니다. 그 외에도 고흐는 결혼을 약속한 여성과 주변의 반대로 헤어지거나 고흐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심적으로 힘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고흐는 여러 점의 수채화와 200점 정도의 유화를 그렸는데, 당시 고흐의 심정이 드러나듯이 주로 음침한 흙빛, 특히 어두운 갈색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때 고흐는 파리에 있는 테오에게 농민들을 그린 그림을 몇 점 보냈지만 어둡고 우중충한 소재와 색감으로 인해 고흐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빈센트는 그림을 다시 배우고자 안트베르펜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교수와 충돌해 아카데미를 뛰쳐나와버렸습니다.
출처 - 투닝 GPT,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