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만화는 제한된 소재로 제작되어 내용이나 의상&배경 등이 고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향에 내려온 유관순은 이제 고향 사람들에게도 만세시위의 불을 지펴야겠다고 마음먹고, 우선 교회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동안 서울에서 있었던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숨겨왔던 독립선언서를 내어놓았다.
거사일은 아우내 장터의 장날인 음력 3월 1일(양력 4월 1일)로 잡았다. 유관순은 한편으로는 시위준비를 하게하고, 자신은 사촌언니 예도(禮道)와 같이 일경의 눈을 피해 지역의 유지들은 물론 교회와 이웃 지역까지 찾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하였고 이를 위해 밤새도록 태극기를 만들었다. 태극기를 그린다는 것은 매우 비밀스러운 작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태극기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유관순과 유예도 뿐이었으므로 두 사람이 전담하여 밤을 새워 가며 그리게 되었다.
4월 1일 아우내 장날 아침, 거사를 미리 알고 찾아온 군중과 장사꾼으로 아우내 장터는 민족혼이 충만했다. 유관순은 군중들의 행렬을 정돈하며, 길목에서 광주리에 숨겨온 태극기를 일일이 나누어주고, 행렬의 선봉에 서서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프랑스의 순국소녀 잔다르크처럼 국가를 위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던 평소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행렬을 이끌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였다. 행렬이 장터 복판에 이르자 쌀 섬 위로 올라가 우리의 독립의 중요성과 반드시 독립을 쟁취해야 함을 연설하며, 군중을 독려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방하고도 온 천지를 활보하며, 우리에게 가진 학대와 모욕을 가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고 살아왔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곧 이어 조인원이 태극기를 세우고, 눈을 부릅뜨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고 감격과 흥분에 휩싸인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가두 행진을 벌였다.
어느새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일본 헌병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은 계속되었다. 이때 유관순의 부모님은 왜병의 총에 살해당했다. 결국 유관순은 사랑하는 부모님 두 분을, 이날 모두 잃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관순도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날 이곳에서 만세를 부르다 순국한 분은 모두 19명이나 되었다.
출처 - < 백석대학교 유관순연구소 - “유관순 열사 일대기”>